[에세이] 레드우드와 만나던 그날(이택룡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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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레드우드와 만나던 그날(이택룡 세무사)
  • 이택룡 세무사
  • 승인 2019.10.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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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룡 세무사 에세이집 「청백리淸白吏가 그립다」 중에서...

오래전 대학에 있을 때였다. 나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생 100여 명을 인솔하고 뉴질랜드에 간 적이 있다. 뉴질랜드는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부패 없기로 세계 제일의 나라로 손꼽힌다. 오클랜드 양로원에 도착한 그날은 토요일이라서 노부부들이 무도회장에 가느라 정장 차림에다 외모에 꽤 신경을 쓴 것 같았다. 두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얘기하며 차에 오르는 모습은 여기야말로 노인들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는 호수 근처의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는 일급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은 주일이라서 이른 아침 로토루아의 넓디넓은 호숫가로 나갔다. 적도의 나라 뉴질랜드의 7월은 겨울이 문턱에 와 있었다. 간밤에 비를 맞은 금잔디가 햇살에 반짝반짝 손짓하며 우리를 반겼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병풍을 친 듯 그 풍광이 산수화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그래서 인간이 자연 앞에 서면 비록 현실의 슬픔이 커도 피 끓는 환희의 정이 몸속에 흐른다고 에머슨은 자연의 신비를 극찬한 것 같다.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덧 포근한 금잔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청옥 빛 호수 위를 타고 오는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진 채 잔디밭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잠시 후 눈을 떠 청명한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이 천군만마가 바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구름은 또 다른 모습으로 자꾸 변해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어느 시인은 인간을 구름에 비유해 먼 나그네의 길을 가며 반항하는 존재라고 했던가.

우리는 삼림욕을 즐기기 위해 레드우드Redwood공원에 갔다. 레드우드는 미국 캘리포니아가 원산지이고 키가 115.6미터나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삼나무(학명 Sequoia sempervirens)로서 매년 1.8미터씩 자란다. 그 레드우드가 뉴질랜드에 이주해서 8,90미터의 높디높은 나무들로 군락을 이뤘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위용과 믿음직스럽고 우람한 자태로 우뚝 서있다. 학생 네댓이 양팔을 펴 나무를 껴안았다. 그 둘레가 3.5미터나 되었다.

학생들의 !” 하는 함성이 로토루아가 떠나갈 듯 메아리쳤다. 레드우드는 껍질이 적갈색으로 덮여 어머니의 가슴처럼 포근하고 부드럽다. 나무의 나이는 90년 생인데, 어쩌면 그리도 클 수 있는지 한국인 수목원장에게 물었다. 토양과 기후, 환경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무를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무를 사랑하는 정성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해방 직후 풋내기 미 해군 장교로 한국의 풍물과 자연에 반해 한국에 귀화한 분이 민병갈(본명 Carl F. Miller) 님이다. 그는 한국 최초로 민간 수목원을 설립하여 천리포수목원장을 했다. “나무가 아프다는 꿈을 꾸고 눈물을 흘릴 만큼나무 사랑이 지극했다. 수천 종의 식물 이름을 한국어 속명은 물론 영어와 라틴어 학명을 줄줄이 외울 정도였고, 우리 국민에게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분이었다.

우리는 레드우드공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굵은 나무뿌리가 땅위로 솟아 서로 뒤엉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큰 나무는 태풍에도 끄떡 없이 잘 견뎌 낸다고 한다. 뿌리의 모습은 무슨 거대한 식물성 파충류들이 꿈틀대며 산길을 이어가는 듯했다. 길 위로 뻗어 나온 나무뿌리는 관광객들이 무심코 질근질근 밟고 지나는 바람에 껍질이 벗겨져 만신창이가 되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서 나무들은 인간을 오죽이나 원망했을까 싶었다.

한번은 제주도의 분재공원에 갔었다. 우리의 선인들은 키가 두어 뼘도 채 안 된 작은 소나무, 단풍나무, 편백나무, 향나무 분재 등을 서재에 놓고 나무의 아름다움을 완상玩賞했다. 하지만 나는 볼수록 나뭇가지가 철사 줄에 묶여 난쟁이가 되는 것 같아서 측은하고 씁쓸했다. 사실 작게 분재한 나무와 큰 레드우드는 모두 씨앗이 30그램에 불과한 것으로, 처음에 싹이 틀 때는 별 차이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차이가 생긴 것이다. 그 두 종류의 나무는 크든 작든 간에 인간에게 요긴한 것과 즐거움을 주지만, 지기를 뽐낼 줄도 모르고 겸손하게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난주에 아내와 딸과 함께 미사에 참석했다. 여느 때와 달리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동창 신부님의 모친이 얼마 전 94세를 일기로 선종하셨는데, 그분 슬하에 71녀가 있는데 그중 아들 넷을 신부로 보냈고, 외동딸도 수녀가 되었다 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얘기인즉 그 어머니는 20년 전 막 사제서품을 받고 강원도 홍천 본당으로 떠나는 막내아들 오 신부에게 작은 보따리를 주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풀어 보라고 일렀다. 보따리에는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당신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는 내용의 편지와 오 신부가 갓난아이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가 들어 있었다. 작은 저고리는 성직자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이 그처럼 작은 존재였음을 기억하며 살아 달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날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때 구도의 길을 갈까 고민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나도 작은 존재로서 겸손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큰 레드우드도 어릴 적엔 분재한 나무처럼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성직자로서 자기를 낮추며 살라는 그 어머니의 유훈이야말로 아들 넷을 신부로 만든 거룩한 어머니의상이 아닌가 싶다.(2015)

이택룡 세무사
사진 : 이택룡 세무사

[저자 프로필]
이택룡 세무사
△ 세무사, 경영학박사
△ 수필가, 사회복지사
△ 전)명지전문대학교 교수
△ 전)명지대 사회복지 대학원 강사
△ 전) 일본 나가사키 순심대학교 강사
△ 제물포고등학교(졸)
△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행정학 석사
△ 명지대 대학원 경영학 박사
△ 인도 뉴델리 ASIAN TRADE UNION COLLEGE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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