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비경 호아루Hoa Lu(이택룡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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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비경 호아루Hoa Lu(이택룡 세무사)
  • 이택룡 세무사
  • 승인 2019.11.0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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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룡 세무사 에세이집 「청백리淸白吏가 그립다」 중에서...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지난해 1015일 그 가을의 길목에서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차에 불현 듯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AOTCA(The Asian-Oceania Tax Consultants’ Association. 아세아 오세아니아 세무사협회의 영문약자. 22개국의 회원 단체로 구성됨.)총회에 참가했다.

베트남은 내가 1967년 콜롬보 플랜에 따라 인도 뉴델리의 국제자유노련 아세아노동대학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길에 호치민 시(옛 사이공시)에 나흘간이나 머문 적이 있다. 베트남에서 전쟁이 한참 치열할 즈음이었다. 내친김에 옛 사이공 시에도 가고 싶었지만 거리도 멀고 일정 관계도 있어 갈 수가 없었다. 서운하긴 했지만 그때의 추억 속으로 끌려가니 감회가 퍽 깊었다.

총회가 끝나고 만찬장에서 우리 대표들이 무대에 올라가 어깨동무하고 춤을 추며<아리랑>을 합창했다. 각국 대표들도 흥겨워 하며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민요라는 사실을 공감해주었다. 만찬장은 마치 한국인의 날 행사처럼 가슴이 벅찬 분위기였고 우리의 위상을 높인 시간이었다.

이튿날 우리는 닌빈Nin Binh 지방의 호아루Hoa Lu로 떠났다.

그곳은 베트남 인들이 종교적으로 신성시할 뿐 아니라 미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낭만적인 곳이기도 했다. 우리는 하노이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호아루에 도착했다.

그곳은 10세기경 베트남 봉건 왕조의 첫 도읍지로 968년부터 1009년까지 12년간은 딘Dinh 왕조가, 나머지 1036년까지 29년간은 레 다이 한Le Dai Han왕부터 시작되는 레Le 왕조의 수도였다. 호아루는 1858년 나폴레옹 3세의 다낭 공격으로 인해 1884년에는 전 국토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 후 1973년 파리 휴전협정에 따라 프랑스, 미국 등 외세가 물러갈 때까지 베트남 인들의 독립 정신을 고취시킨 곳으로 그들이 매우 신성시하는 곳이라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호아루에 있는 사원은 매년 310일이면 딘왕과 레왕을 기리는 의식이 열려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다. 도처에서 모여든 관광객들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 통치국이었던 프랑스 관광객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고 했다.

우리 일행 15명은 선착장 앞에 있는 식당에서 중식을 마치고 배 바닥의 길이가 3.5m~4.5m ‘삼판sampan’이라 부르는 대나무로 만든 베트남 전통식 배에 21조로 나눠 탔다. 삿갓 모양의 non’이라 불리는 전통 모자를 쓴 여 뱃사공은 처음에는 장대로 배를 밀고 가다가 얼마쯤 지나서는 노를 젓기 시작했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려 을씨년스러운 가운데 배는 수로를 따라 청옥 빛 강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배들은 우리 뒤를 따라 꼬리를 물고 줄을 이었다. 먼저 간 배에 탄 일행은 돌아오면서 반갑다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강물 위에는 수초가 숨 쉬고 연꽃이 제법 가을 정취를 풍기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향연을 벌여 만추의 즐거움을 더했다.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했다.

배는 기암괴석의 절벽 옆을 지나 수중석회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전등불을 군데군데 설치해 어둡고 꼬불꼬불한 뱃길을 밝혀 주고 있었다. 동굴의 길이가 최대 320m나 되는데 여 뱃사공은 힘든 기색도 없이 묵묵히 노를 저어 갔다. 유네스코는 그곳의 수중동굴 아홉 군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동굴 세 군데를 한 시간 반 동안 구석구석을 완상玩賞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그러나 동굴 안은 수로가 좁은 데다가 천장에서 삐죽삐죽 나온 석순 때문에 조바심도 나고 두렵기도 하여 한쪽손으로는 뱃전을 꽉 잡아야만 했다.

그곳 사람들은 호아루를 탐콕Tam Coc’이라 부르며 신비스러운 자연 풍광이 하롱베이와 닮았다 하여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부른다. 그 일대는 지질학적으로 중국 남서부의 석회암 지대에 속해 있고, 닌빈에서 시작된 그런 지세가 하롱베이를 거쳐 중국 계림까지 뻗어 있다고 한다. 참 아름다운 비경祕境이 계속 펼쳐져 나는 무아지경에 빠져 들었다.

우리는 배를 타고 수중동굴 속의 수로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짜릿함을 느꼈고, 노를 젓는 여 뱃사공의 모습에서 베트남 여인의 강인함과 모성애 상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종일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로 미소 짓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어떤 꿈과 희망이 있기에 그토록 고된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들이 좋아하는 오토바이를 장만하려는 꿈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꿈과 희망이 있기에 고통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 아닐까.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지 않던가.

내게도 한때 청운의 꿈과 위대한 것을 향한 도적이란 게 있었지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벽에 “Challenge to greatness(위대한 것을 위해 도전하라).”고 쓴 퍽 감명 깊은 글귀가 문득 떠오른다. 젊은이들은 그들이 세운 목표를 위해 용감하게 도전함으로써 목표를 성취시킬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그날 그곳에서의 뱃놀이는 마치 저 유명한 중국의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소동파蘇東坡(1036~1101)는 필화 사건으로 죄를 지어 황주의 양자강에 유배돼 있을 때 황주성 밖의 적벽에서 선유하면서 <적벽부赤壁賦>라는 대작을 지어 노래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신곡神曲>이라는 대작을 남긴 단테나, 정약용丁若鏞<목민심서牧民心書>라는 대작도 쓰라린 유배 생활이 그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소동파는 중국 송대宋代의 시인이며 서예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대나무를 사랑했는데 여기 <어잠승록윤헌於潛僧綠荺軒> 한 수를 소개한다.

可使食無肉 고기가 없어도 식사는 할 수 있지만
不可居無竹 대나무가 없으면 살 수 없다네

無肉令人瘦 사람은 고기가 없으면 허약해 지겠지만
無竹令人俗
대나무가 없으면 속되게 된다네

人瘦尙可肥 사람은 쇠약해져도 살은 다시 찌울 수 있지만
俗士不可醫
속된 것은 도저히 고칠 수 없다네

적벽부는 소동파가 1082년 가을과 겨울 황주성 밖의 적벽에서 배를 타고 노닐면서 지은 시로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호아루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독립 정신을 고취시킨 곳이다. 그들의 아픈 역사의 족적을 반추해 보는 것도 여간 뜻있는 일이 아니겠는가.(2012)

이택룡 세무사
저자 : 이택룡 세무사

[저자 프로필]
이택룡 세무사
△ 세무사, 경영학박사
△ 수필가, 사회복지사
△ 전)명지전문대학교 교수
△ 전)명지대 사회복지 대학원 강사
△ 전) 일본 나가사키 순심대학교 강사
△ 제물포고등학교(졸)
△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행정학 석사
△ 명지대 대학원 경영학 박사
△ 인도 뉴델리 ASIAN TRADE UNION COLLEGE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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