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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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비효과
  • 이택룡 세무사
  • 승인 2019.08.24 16: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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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택룡 세무사 에세이집 [청백리淸白吏가 그립다] 중에서

지난해 나는 세무사 십여 명과 함께 지역사회 재능 바치기의 일환으로 일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주방 일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설거지와 취사를 보조하는 일인데도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았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빗자루로 방 청소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그때는 내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날은 복지관에서 자원봉사하는 날이라서 화장실에서 목욕재계하고 면도를 하려고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웬 날벌레들이 얼굴주위를 맴돌아 면도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여름철이라서 그런가 생각하다가 주방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 때문일까 싶어 그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복지관에 갈 시간이 돼서 우선 집 안 구석의 하수구마다 살충제를 뿌렸다. 그리고 우유한잔에 빵 한조각으로 조반을 때우고 서둘러 복지관에 갔다.

먼저 지하의 자원봉사자실에서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회원들이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무례하다 싶어 주방에서 커피 잔을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 푸른 잔디와 너른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호수에는 오리 여러 마리가 줄을 서서 물속으로 곤두박질을 치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아침 풍경이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푸른 초원에서 영광과 빛나는 꿈을 발견했다."고 했다.

나도 위대한 것을 위한 꿈을 실현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느새 시간이 10시30분이 넘었다. 서둘러 주방으로 내려가니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검정색 장화를 신고, 앞치마에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에 들어섰다. 마치 출정하는 병사들처럼 말이다. 주방에는 여성 취사 요원들이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영양사의 지시에 따라 무채를 썰고 설거지 일을 맡았다. 이런 집에서 아내를 도우며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지만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무심하고 형편없는 남편임을 자인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1,500여 명 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에 양이 참 많았다. 두 개의 대형 전기 가마솥에서 강남콩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나고, "픽~"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밥이 다 되었음을 알려 왔다. 구수한 강남콩 밥에 된장국, 동태찜, 김치, 무채무침, 김 등의 찬이 식욕을 돋웠다. 식대 2,200원짜리 치고는 진수성찬이었다. 

11시 30분이 되자 어르신들은 질서 있게 줄을 지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얘긴지 알 수는 없지만 화기애애하고 행복해 보였다.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통계상 세계에서 최하위에 속한다던데 그곳만은 예외인 듯싶었다. 그분들은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6.25전쟁의 참혹함을 겪었고, 전쟁 주에는 초근목피로 끼니를 연명했다. 또한 열사의 중동 건설 현장의 역군으로 혹은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되어 목숨을 걸고 희생과 피땀으로 당시 국민 소득 80달러에서 3만 달러의 선진국 문턱으로 오늘의 한국 경제를 부흥시킨 주역들이 아니던가. 그분들이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이런 하잘 것 없는 봉사는 봉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봉사란 말은 받들 봉奉, 모실 사仕, 즉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다.

어르신들의 식사가 끝날 때마다 소반과 그릇이 나오는 대로 꼬박 서서 그것들을 닦았다. 얼굴은 땀인지 콧물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픈데 쉴 틈도 없이 소반과 식기가 내 앞에 계속 쌓였다. 마치 <모던 타임스> 영화 속의 주인공인 찰리 채플린이 빠르게 움직이는 콘 베어 벨트 앞에서 볼트 조이는 일이 미처 처리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모습이 나오는데, 내 처지가 그와 같아서 웃음이 났다.

네 시간의 주방 설거지 일은 끝이 났다. 내 작은 봉사로 노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기쁨을 느낄 뿐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배우게 됨을 느꼈다. 그라나 한편 재능 나누기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수신제가도 못하면서 치국평천하가 웬 말인가.' 하고 반성해 보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밖에서 봉사한답시고 떠드는 행위는 위선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봉사란 파급 효과가 크게 나타나게 마련임은 틀림없다. 얼마 전 신문에 소개된 내용인데, 그 글에서 L 씨는, "자기 몸을 던져 남을 위하는 게 진짜 봉사다."라고 하였다. 그는 15년 동안 에티오피아, 아이티, 네팔, 스리랑카, 베트남 등 십여 개 '열린 운영사'를 맡고 있는데, K석유(주) 회장의 딸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별 고생 없이 살고 있는 그다.

미국의 MIT공대 기상학자인 로렌츠 교수는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 "나비들이 날아가며 일으키는 작은 바람이 태풍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는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일으킨 날갯짓이 대기의 흐름을 변화시켜 텍사스 주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명 '나비효과' 개념을 창안했다. 시작은 작지만 그 결과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방에서 봉사하는 일은 오후 1시 30분에 끝이 났고, 우리도 주방 요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육신은 피곤하지만 행복한 하루였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황혼 길목에서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시구詩句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중략)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내가 살아온 내 삶이 어떤 열매를 맺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성해본다.

이택룡 세무사
이택룡 세무사

[저자 프로필]

이택룡 세무사

△ 세무사, 경영학박사

△ 수필가, 사회복지사

△ 전)명지전문대학교 교수 

△ 전)명지대 사회복지 대학원 강사

△ 전) 일본 나가사키 순심대학교 강사

△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행정학 석사

△ 인도 뉴델리 ASIAN TRADE UNION COLLEGE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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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수 2019-10-01 15:13:12
이택룡 세무사님, 멋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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